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原州 趙 博士의 동행

注文津주문진 출사出師

by 原州聲援 趙 博士 2025. 6. 13.

대지원망大志遠望

 클 대,  뜻 지,  멀 원,  바랄 망,

뜻은 크게 가지고 희망은 원대하게 다스려라.

큰 뜻을 품고 멀리 바라보자. 

큰 꿈이 있어야 결과도 크다고 합니다.

우리  모두가 큰 뜻을 공유하여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합시다.

 

출사표出師表 제갈공명諸葛孔明

선제창업미반先帝創業未半 이중도붕조而中道崩 금천하삼분今天下三分

익주파폐益州罷弊 차성위급존망지추야此誠危急存亡之秋也

선제, 창업한 지 반도 안 되어 중도에 붕어하셨다.

이제 천하가 셋으로 갈리어 익주가 피폐해졌으니, 진실로 위급 존망의 때다.

연시위지신然侍衛之臣 불해어내不懈於內 충지지사忠志之士 

망신어외자忘身於外者 개추선제지수우蓋追先帝之殊遇 욕보지어폐하야欲報之於陛下也

모시는 신하들 안에서 게을리 하지 않고, 충성의 뜻을 지닌 무사들이 바깥에서

국토를 보위한는 것은 대체로

선제의 특별한 대우를 입어 이것을 폐하께 갚고자 하는 것이다.

성의개장성청誠宜開張聖聽 이광선제유덕以光先帝遺德 회홍지사지기恢弘志士之氣 

불의망자비박不宜妄自菲薄 인유실의引喩失義 이색충간지로야以塞忠諫之路也

진실로 폐하는 총명한 귀를 활짝 열어, 선제의 끼치신 덕을 널리 빛내고,

지사의 의기를 넓히고 키우는 것이 옳을 것이다.

함부로 자기 스스로를 덕이 엷다고 낮추어서, 조리에 맞지 않는 비유를 끌어다

변명하여, 진심에서 우러나는 충간을 막는 것은 옳지 못하다.

궁중부중宮中府中 구위일체俱爲一體 척죄장부陟罪臧否 불의이동不宜異同 

약유작간범과若有作奸犯科 급위충선자及爲忠善者 의부유사宜付有司

논기형상論其刑賞 이소폐하평명지리以昭陛下平明之理

궁중과 부중은 한가지로 일체다.

선악을 상주고 벌주되, 틀림이 없어야 한다.

만약 간악한 짓을 범한 자와 충성과 선행을 한 자가 있으면 사직에 부쳐서 그 형벌과

상찬을 논함으로써 폐하의 공평하고 도리에 밝은 정치를 세상에 드러내야 할 것이다.

불의편사사내외이법야不宜偏私使內外異法也 시중시랑侍中侍郞

곽유지비위동윤등 郭攸之費褘董允等 차개양실此皆良實 지려충순志慮忠純

시이선제간발 是以 先帝簡拔 이유폐하以遺陛下

한쪽으로 치우쳐 이곳과 저곳이 법이 달라서는 안 된다.

시중, 시랑, 곽유지, 비위, 동윤 등, 이들은 모두 선량하고 진실하며,

뜻이 곧고 충성스러우며 맑다.

이런 까닭에 선제께서 발탁하시어 폐하께 내려주셨다.

우이위궁중지사 愚以爲宮中之事 사무대소事無大小 m실이자지연후시행悉以咨之然後施行

필능비보관루必能裨補闕漏 유소광익有所廣益 장군향將軍向寵 성행숙균性行淑均

효창군사曉暢軍事 시용어석일試用於昔日 선제칭지왈능先帝稱之曰能

생각컨대, 궁중의 일은 일의 대소를 막론하고 이들과 상의할 일이다.

그런 후에 시행하면 반드시 남거나 모자람 없이 널리 이익 되는 것이 있을 것이다.

장군 향총은 성행이 선량하고 치우침이 없으며, 군사실무에 밝다.

예전에 써보시고 선제께서 능력이 있다 하셨다.

시이중의是以衆議 거총위독擧寵爲督 우이위영중지사愚以爲營中之事

사무대소事無大小 실이자지悉以咨之 필능사행진화목必能使行陣和睦 우열득소優劣得所

그래서 여러 사람과 의논하여 향총을 들어 장관을 삼았다.

생각컨대, 군사의 일은 일의 대소를 막론하고 이 사람과 상의하면

능히 군영내의 사람들을 화목하게 하고, 우열을 잘 가려

적당한 사람을 적당한 직책에 배치할 수 있을 것이다.

친현신親賢臣 원소인遠小人차선한소이흥륭야此先漢所以興隆也 

친소인원현신親小人遠賢臣 차후한소이경퇴야此後漢所以傾頹也 선제재시先帝在時

매여신론차사每與臣論此事 미상불탄식통한어환령야未嘗不歎息痛恨於桓靈也

어진 신하를 친하고, 소인을 멀리함은, 선한의 흥성한 까닭이요,

소인을 친하고 현신을 멀리함은, 이는 후한이 몰락한 까닭이다.

선제께서 계실 적엔 늘 신과 더불어 이 일을 의논하시며,

환제, 영제 때의 정치 문란에 탄식하고 통한하셨다.

시중상서장사참군侍中尙書長史參軍 차실정량사절지신此悉貞亮死節之臣

원폐하친지신지願陛下親之信之 즉한실지륭則漢室之隆 가계일이대야可計日而待也

시중상서, 장사, 참군, 이들은 모두 절개있고 진실하니 충절에 죽음도 불사할 인물들이다.

폐하는 이들과 친하시고, 이들을 믿으면, 곧 한실의 부활은 가히 날을 세어 기다릴 것이다.

신본포의臣本布衣 궁경남양 躬耕南陽 구전성명어난세苟全性命於亂世 

불구문달어제후不求聞達於諸候 선제불이신비비先帝不以臣卑鄙

외자왕굴猥自枉屈 삼고신어초려지중三顧臣於草廬之中 자신이당세지사諮臣以當世之事

신은 본시 벼슬도 없는 촌놈으로서 몸소 남양에서 밭이나 갈며,

이 난세에 간신히 생명이나 보전할 뿐, 나의 이름이 제후의 귀에 들리기를 원하지 않았는데,

선제先帝께서 저를 비천하다 하지 않으시고, 외람하게도 스스로 굽히시어,

세 번이나 저의 초라한 집을 찾으시며, 신에게 당시의 세상사를 물으셨다.

유시감격由是感激 허선제이구치許先帝以驅馳 후치경복後値傾覆 

수임어패군지제受任於敗軍之際 봉명어위난지간奉命於危難之間

이래이십유일년의爾來二十有一年矣 선제지신근신先帝知臣謹愼 

고임붕기신이대사야故臨崩寄臣以大事也

이로 말미암아 감격하여 선제先帝께 견마의 충성을 바칠 것을 허락하였다.

뒤에 장판교 싸움에 패하여 나라가 기울어질 즈음 나라를 구하는 임무를 맡아,

그 이래 이십 일년이 지났다. 선제先帝께서 저의 신중함을 아는 까닭에

임종하실 적에 저에게 적군 토벌과 한실漢室중흥의 큰 일을 당부하셨던 것이다.

수명이래受命以來 숙야우려夙夜憂慮 공탁부불효恐託付不效 

이상선제지명以傷先帝之明 고오월도려故五月渡瀘 심입불모深入不毛

금남방이정今南方已定 갑병이족兵甲已足

명을 받은 이래, 밤낮으로 숙고하였지만 토벌의 효력은 나지 않아,

선제의 총명함을 상할까 두려워하였다.

까닭에 5월에 여수를 건너, 깊이 불모의 땅으로 진격하였다.

이제 남방은 이미 평정되고, 군사와 장비도 충족되었다.

당장솔삼군當奬率三軍 북정중원北定中原 서갈노둔庶竭駑鈍양제간흉攘除姦凶

흥복한실興復漢室 환어구도還於舊都 차신소이보선제此臣所以報先帝

마땅히 삼군을 거느리고 북으로 중원을 평정할 것이다.

바라건데 둔한 재주를 다하여 흉칙한 적을 물리쳐 한실을 부흥하고,

옛 도읍에 돌아가고자 함이라. 이는 신이 선제께 보답하고 폐하께 충성하는 직분이다.

충폐하지직분야忠陛下之職分也 지어짐작손익至於斟酌損益 진진충언進盡忠言

즉유지위윤지임야則攸之褘允之任也 원폐하착신이토적흥복지효願陛下託臣以討賊興復之效

손해와 이익을 짐작하고 충언을 다해야 하는 사람들로서는 곧 곽유지, 비위, 동윤 등이

맡은 바 임무다. 원컨대 폐하는 신에게 맡기기를 적들을 부수고,

한실부흥의 실효를 거두는 책임을 맡기시라.

만약 실제 효과가 없다면 신의 죄를 다스려서 선제의 영혼에 고하시라.

불효즉치신지죄不效則治臣之罪 이고선제지령以告先帝之靈 

약무흥덕지언若無興德之言책유지위윤등지구責攸之褘允等之咎

이창기만以彰其慢 폐하역의자모이자취선도陛下亦宜自謀以諮諏善道

찰납아언察納雅言 심추선제유조深追先帝遺詔

만약 흥덕의 말씀이 없다면 유지, 위, 윤 등의 허물을 책하여서

그 태만함을 밝히시라. 폐하도 또한 의당히 스스로 도모하시어서

선책을 자문하시고, 바른 말을 살펴 거두어, 깊이 선제의 유조를 따를 것이다.

신불승수은감격臣不勝受恩感激 금당원리今當遠離 임표제읍臨表涕泣 부지소운不知所云

신은 은혜를 받은 감격을 이기지 못하여, 표를 씀에 눈물이 나와 말할 바를 알지 못하겠노라.

윗사람에게 올리는 글을 표라 합니다.

즉 일의 순서를 밝혀 임금을 깨우쳐서 충성을 다하는 글을 표라 합니다.

임금에게 상주上奏하는 글의 종류에는 장·표·주·박 4종이 있는데

육국六國, 진한秦漢시대에는 모두 상서上書라 하였는데

그 이후에는 모두 표라 하였습니다.

주로 천자에게 올리는 것을 표, 제후에게 바치는 것을 상소上疏라 하였지요.

제갈량諸葛亮의 출사표出師表에 나오는 이야기들 살펴보기로 한자.

삼국 시대, 촉나라의 유비가 죽자 남방 이족 이

우두머리인 맹획孟獲은 이를 틈타 군대를 동원하여 촉나라에 반항하였다.

이즈음 유비의 아들 선은 촉나라의 후주后主 자리를 물려받고,

제갈량은 계속 승상의 일을 맡아보며 무향후武鄕侯에 봉하여져

촉나라의 군사 지휘권을 장악하고 있었다.

제갈량은 안정적인 국면을 유지하기 위하여, 충분한 휴식을 취하며 힘을 모았다.

몇 년이 지나자, 촉나라는 이전처럼 국력을 회복하고, 충분한 식량도 비축하게 되었다.

서기 225년, 제갈량은 직접 대군을 이끌고 남쪽 원정에 나서

맹확을 일곱 차례 붙잡았다가 일곱 차례 놓아주었는데,

맹획은 진심으로 감복하여 촉나라에 귀순하였다.

제갈량은 오나라와 연합하여 위나라를 정벌할 것을 일관되게 주장하였다.

남방이 평정되어 근심이 하나 사라지고, 밖으로는 오나라와 우호적인 관계가 지속되자,

제갈량은 위나라 정벌을 위한 출병을 결심하였다.

출병에 앞서, 그는 유선에게 글을 올려, 동한東漢 말기 왕권이 무너지게 된

배경 등을 언급하며 충신들의 말을 잘 듣고, 상벌을 엄정하게 집행할 것을 간언하였다. 

삼국지 촉서蜀書 제갈량전諸葛亮傳에는 227년 군대를 이끌고

한수漢水가에 주둔하다가 출발에 즈음하여 소를 올렸다 라는 기록이 있는데,

그 때 올린 글이 바로 이 출사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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