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原州 趙 博士의 휴게소

以備待時

by 原州聲援 趙 博士 2022. 8. 4.

이비대시以備待時

써 이, 갖출 비,  기다릴 대,  때 시,

준비하고 때를 기다리다,

기회는 치밀하게 준비하는 이에게 찾아오는 것이다.

역경은 군자는 준비를 단단히 하고 일을 시작한다君子 以作事謀始고 가르치고 있다,

춘추시대 아름다운 우정, 관포지교管鮑之交의 주인공 관중도 저서 관자管子에서

준비하고 때를 기다리며, 때가 됐을 때 성사시키라以備待時 以時興事고 강조했다. 

반곡,관설동盤谷,觀雪洞

원주시조례 제 340호에 의거 과소동 통폐합으로 인하여

1999. 1. 1 13개통 55개 반으로 이루어진 새로운 반곡관설동이 생성되었으며,

전형적인 농업위주의 집단촌과 도시 형태의 마을단위로 구성되어 있으며

단관지구의 택지개발로 인하여 인구의 급증 및 발전이 예상되고 있다.

관설동은 원주시청에서 동남방으로 9㎞ 떨어져 있으며

원주-제천간 5번 국도의 관문이고,

원주시 단구동, 반곡동, 무실동과 판부면 금대리, 신촌리와 연접해 있다.
지금으로부터 약 350년 전 학자인 허후 許厚의 호를 따서 관설이라 하였다 한다.

허후의 호는 솬설 觀雪이고 그는 남인의 허목, 허미수선생과 육촌간이라 한다.

그의 학문과 도덕을 흠모하여 문막에 살면서 강원감영에 근무하던

효자 황무진이 수시로 문안을 드리며 학문에 대한 토론을 했으며

친분이 두터웠다고 한다.

후일 허관설이 살던 곳이라 하여 관설의 글자를 따와서 관설동이라 했다고 한다.
관설의 원래 이름은 '벌논' 즉, '벌판의 논'이었다.

벌논 벌눈 볼눈으로 변천되었으며

따라서 원래는 들의 이름이었다가 자연부락 이름이 되었고 다시 동 이름이 되었다.

허후가 이 지명 '볼눈'을 호로 삼아 한자어로 관설 觀雪 이라고 하였고

이것이 관설동이라는 이름이 되었다.

안벌눈, 밧벌눈이 있어 유래를 명확히 밝혀주고 있다.
원래 원주군 부흥사면의 지역으로서, 벌논 벌눈이라 하였다.

인조 때 현감 허후가 살면서 그 호를 벌눈의 뜻을 따서 관설이라 하였고,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일리와 판제면의 본이리 각 일부를 병합하여

관설리라 하여 판부면에 편입되었다.

일제 때 동네 전역을 관설리라 하였고 관설의 발상지인 2통은

바깥 쪽에 위치한다 하여 外觀雪 밖볼눈이라 하였다.

 2 6반 지역은 안쪽에 위치한다 하여 內觀雪안볼눈이라 하였다가

1973년도 행정구역개편으로 시에 편입되면서 관설동이라 하였다.
치악산과 백운산의 지류가 모여 형성된 원주천의 상류에 위치한 관설동은

경남 마산에서 평안북도 중강진으로 이어지는 5번 국도와 중앙선철도가 통과하고

대구에서 춘천을 연결하는 중앙고속도로가  원주시의 남쪽 관문이다.

4통 지역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농경지로서 쌀농사와 채소, 과수를 주로

경작하여 생활하고 있으며 축산업도 한 때 성행하였으나

원주천 오염의 방지대책 때문에 최근 점차 줄어들고 있다.

치악산의 전설을 살려 꿩 5만여수를 집단으로 사육하여 분양, 판매하고 있다.
또한 관설동 나옹정, 진등 마을 일대 20만평이 택지로 개발되고 있어서

새로운 주택지로 부각되고 있다.

 葛村
대평교 서쪽에 있는 마을로 5 1반 지역을 말한다.
야산에 칡이 많이 자생하고 있어  칡갈,  마을으로 부르게 되었다.
풍수지리설에 갈화낙지葛花落地 토지에 명당이 있다는 설이 있다.
곳집거리들
초당거리산 남쪽에 인접한 들을 말한다.
부근에 곳집이 있어서 곳집거리들이라고 한다.
나옹정 懶翁亭
삼흥아프트 남쪽, 한국통신원주전화건설국 서쪽에 있던 정자를 말한다.
동네입구 조그만한 바위동산 앞으로 내가 흘렀는데

그 산 위에 정자가 있어 그곳에서 고려시대 나옹대사가 낚시질을 했다고 한다.

나옹대사는 고기가 물리면 다시 물에 놓아주었다고 하는데

후일 이 곳을 나옹대사의 이름을 따서 懶翁亭이라 부르게 되었다.
당둔지
관설초등학교와 관설교 사이 동쪽에 있는 마을을 말한다. 당뚠지라고도 한다.
당둔지인데 당이 있던 마을이라서 당둔지라 한다.
대평교 大平橋
5번 국도와 원주농고 쪽을 잇는 다리이다. 대평다리라고도 한다.
원래는 태평교 太平橋로서 옛날에 전투를 하다가 여기서 太平하게 되었다고 하여

太平橋라 하였다고 한다.

근래에 와서 대평교 大平橋로 개칭되었다.
길이 20.5m, 너비 7.2.m로 1983년에 가설하였다.
도래구덩이고개
귀론 소류지에서 판부면 내남송으로 넘어가는 고개를 말한다.
도라지가 많이 난다하여 유래하였다고 한다.
동작골
대평소류지 동쪽 골짜기를 말한다.

동쪽에 있다고 하여 동작골이라 한다.
메기바우
대평교 앞 개울에 있는 바위를 말한다.
바위 밑에 메기가 많이 있어서 메기바우라 한다.
밧벌눈
벌눈 바깥쪽에 있는 마을을 말한다. 외관설이라고도 한다.
바깥에 있는 벌논벌눈이라고 하여 밖벌눈 밧벌눈이 되었다

백배미
밧벌눈에 있는 작은 골짜기를 말한다.
논다랭이가 약 백 개 정도 되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바깥을 뜻하는 '밖'과 논배미를 뜻하는 '배미'가 결합하여 밖배미

백배미가 된 것으로 보인다.
보들
관설초등학교에서 봉산천 동쪽에 인접한 들을 말한다.
보가 있는 곳에 있는 들이라 보들이라고 한다.
봉우재
6통 지역으로 예전 군부대가 있던 자리의 동편 산을 말한다.
조선시대 봉화로 신호를 하던 봉우리라 하여 봉우재라 한다.

지금은 기우제를 지내고 있다.
봉천鳳川
금대리 가리파재에서 시작하여 금대리와 관설동, 개운동, 봉산동을 거쳐

흐르는 내를 말한다.

봉산천이라고도 한다.
봉천은 봉산동 봉산에서 이름을 따온 것이다.
대체로 모래기천과 화천이 만나는 봉산동부터는 원주천이라고 한다.
산밑말 
대평소류지 동쪽에 있는 마을을 말한다.
산밑에 있다하여 산밑말이라 한다.
샘들 참산뜬지
신촌에서 동쪽의 안쪽 지역에 있는 들을 말한다. 참산뜬지라고도 한다.
큰 샘이 있는 들이라서 샘들이라고 부른다.
섬바우
관설동 시내버스 종점에서 동쪽에 있다.
서 있는 큰 바위라서 선바우,섬바우 한다.
섭성터
성안이 마을에 있는 성터로 성터, 신성터라고도 한다.

지금의 해미산성을 말한다. 지금도 성이 뚜렷이 남아 있다.
섭재 
밧벌눈 동쪽 봉천 건너에 있는 마을로 섭성터 밑에 있다.

섭재는 다시 웃섭재와 아래섭재로 나뉘는데

원주천 동쪽 상류에 있는 웃섭재는 버덩섭재, 하류에 있는 아래섭재는 둔덕섭재라고 한다.

섭재를 섶재라고도 쓴다.
섭재는 섭재 인데 섭은 나무가 많은 숲을 의미하는 섶, 숲의 옛말이고

재'는 고개를 뜻한다.

한자로  땔나무, 섶신과  재성을 합해서 薪城이라고 썼다.
상·하 신성 위쪽에 섭성터, 곧 해미산성 海美山城이 있다.

섭재에서 이 성을 섭성, 성터라고 부른다거나 성안이, 성내라는 지명이 있는 것으로 보아

해미산성은 원래 섭재에서 관할하거나 섭재가 중심이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금대리 일론 쪽보다는 섭재쪽이 교통이 편리하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숯둔
아래섭재 동쪽에 있는 골짜기를 말한다.

수둔이라고도 하며 길아재로 통하는 골짜기이다.

숯든이라고도 한다.
예전에 숯을 구웠다고 하여 숯둔이라고 한다.
아래섭재
아래에 있는 섭재마을을 말한다.

밧벌눈 동쪽 건너이다.

하섭재, 하신성이라고도 한다.
아래에 있다고 해서 아래섭재라고 한다.
안벌눈
벌눈 안쪽에 있는 마을로 관설교 안쪽에 있고 중앙고속도로가 지난다.

내관설이라고도 한다.
안쪽에 있는 벌논 벌눈이라고 하여 안벌눈이 되었다.
여우바우
단구동 구루니에서 판부면 남송으로 올라가는 길에 있다.
여우굴이 있어서 여우바우라고 한다.
옻물
봉우재 아래에 있는 샘을 말한다.

약수터라고도 한다.
옻 오른 사람이 이 물에 목을 축이면 낫는다 하여 옻물이라고 한다.
웃섭재
섭재 위쪽에 있는 마을을 말한다.

상섭재, 상신성이라고도 한다.
섭재 위쪽 마을이라 해서 상섭재라 부른다.
품무골
덕거리 북쪽 아래에 있는 골짜기를 말한다.
불무골, 풀무골을 땅이름으로 쓰는 곳은 대장간이 있었거나 쇠가 나는 곳에 많다.

풀무골 품무골로 변하였다.
학마을

안벌눈 동쪽 입구에 있는 마을을 말한다.
학이 많이 살아서 학마을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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