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原州 趙 博士의 휴게소

원주 연세캠퍼스

by 原州聲援 趙 博士 2022. 11. 22.

부는  바람의끝이  약간은  쌀쌀하게  느껴졌지만  가을의  향기을  느낄  수  있는  날이  었습니다.

늦은   감은  있지만  은행잎이  쌓여  환상적이며.  걷기  좋은길이  너무나  멋지군요.

좀더  여유를  가지고  다녀  왔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만  남는군요.

여그는  원주시  흥업면  매지리에  위치한  연세대학大學  원주캠퍼스  입니다.

그림으로  한번  엮어  봅니다.

이곳에  오시는  벗님들  잠시  연세캠퍼스의  가을을  감상  하겠습니다.

바쁘게  살아가는  우리네  삶에  마음의  쉼의  시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  가져봅니다.

공원길로  들어서면  마음이  한결  차분해  집니다.

아름다운  자연경관은  언제나  바쁜  일상을  한박자  쉬고.  재충전의  에너지를  제공하지요.

우리는  멋진  자연과  함께  휴식  하실때에  자연은  더욱더  그  빛을  발이하게  되는  것입니다.

고단한  인생에  여정을  잠시나마  이곳에  머물  수  있어서  행복했던  순간들이였습니다.

노천극장으로  가는길.

어떤길을  걷느냐에  따라  만남이  달라지게  되지요.

우리가  걷는길이  어떻게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인생도  달라질  거예요.

여그는  노천극장  입니다.

모든  축제때는  여그서  공연을  하지요.

여그는 연세플라자  입니다.

은행잎이  쌓여  환상적이며.

깊어가는  가을속  가을이  한층더  깊어만  갑니다.

여그는  학생회관으로  학생들을  위한  공간입니다.

여그는  중앙도서관입니다.

배움에는  끝이  없다고들  하지요.

연세대학大學교의  상징인  독수리상

여그는  가장  끝자락에  있는  백운관  

보건과학대학  건물이며.  캠퍼스에서  가장  끝자락에  있다.

여그는  창조관이고  과기대  건물이죠.

화학실험은  이건물에서  하는  것이지라인.

이  웅장한  건물은  정의관이구요.

조선의 제6대 국왕. 묘호는 단종端宗,

시호는 공의온문순정안장경순돈효대왕恭懿溫文純定安莊景順敦孝大王,

는 홍위弘暐.

세종의 적장손이자 문종과  현덕왕후의 적장남으로 태어나

왕세손으로 책봉되었으며 세종이 사망한 뒤

문종이 보위에 오르면서 왕세자로 개봉改封되었다.

태어나자마자 어머니 현덕왕후가 산후병으로 죽었고

할아버지 세종과 할머니 소헌왕후도 단종이 어렸을 때 사망했으며,

마지막 남은 직계 존속인 부왕 문종마저 지병 등창의 재발과 악화로 승하하면서

혈혈단신으로 어린 나이 10 10개월에 보위에 올라 김종서, 황보인 

원로 고명대신들의 보좌를 받게 되었다.

즉위한지 1년 후 숙부 수양대군이 반란 계유정난을 일으켜 권력을 잡자

반강제적으로 실권을 빼앗기고 상왕으로 물러나면서 왕위를 빼앗겼다.

상왕 재위기에 일어난 단종복위운동의 여파로 자신의 권력에 위협을 느낀

숙부 세조에 의해 폐위되어 강원도 영월로 유배 당했으며,

17살 만16 3개월이 되던 해 끝내 그 곳에서 살해되었다

본명은 이홍위로 특이하게도 이름이 두 글자이다.

조선의 임금들 중 이름이 두 글자인 사람은 단종과 태종둘뿐이고,

다른 왕들은 원래부터 외자였거나 외자로 개명했다.

고려 때부터 피휘 때문에 임금이나 왕자군은 죄다 외자 이름을 써 왔고,

그 한 글자를 택할 때도 일상생활에 잘 사용하지 않는 글자를 엄선했다.

태종 이방원은 이름에 흔한 한자인 꽃다울 방과 멀 원을 썼지만

피휘를 신경쓰지 않았다.

영조는 이름에 비교적 흔한 글자인 금이 들어갔기 때문에

자신의 본명을 무려 40년 동안이나 숨겼다고 한다.

자기 이름이 금이라고 하는데,

임금의 휘를 알게 된 신하가 글을 낭독하다가 금자가 나와 피휘 문제로

글을 계속 읽지를 못하자 영조는 그 사실을 알고 그냥 읽으라 직접 하교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다만 조선 초기 임금 이성계, 이방과, 이방원들은 고려 말기 때 태어난 사람으로

이름을 지을 때는 왕이 될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외자일 이유가 없었다.

철종 또한 그의 할아버지인 은언군이 조선의천주교 박해에 엮이고 역모로 몰려

서인평민으로 강등된 후 태어났기 때문에 아버지 대부터는

군호조차 받지 못한, 왕위 와는 거리가 매우 먼 상태였는지라

이름이 외자일 필요가 없었다.

고종은 아예 상태가 더 안 좋아, 전임인 철종과 무려17이나 차이가 나는,

인조로부터 갈라져 나온 남과 다를 바 없는 상태였다.

즉 태어날 때부터 임금이 될 것임을 알면서도 굳이 두 글자 이름을 지어

가진 사람은 단종이 유일하다.

다만 예전에는 태어날 때 짓는 이름과 족보에 올리는 이름이 달랐는데,

단종의 경우 태어날 때의 이름을 왕이 된 뒤

미처 바꾸지 못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한 추측이다.

아마 정국이 불안정하여 이름을 미처 바꾸지 못한 상태에서 바로 양위해

개명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보지도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조선사 27명의 임금을 거치며 적장자 중에서 왕세자로 책봉된 이후 별탈 없이

왕위에 오른 임금은 오직7명 문종. 단종. 연산군.인종.현종.숙종. 순종뿐이다.

그 중 단종은 유일하게 적장자 출신 왕세자의 아들로 태어난 적장자,

즉 적장손 출신 국왕으로, 조선 왕조의 역대 국왕 중 가장 완벽한 정통성을 갖춘 국왕이다.

아버지 문종은 할아버지 세종의 장남이었고,

단종 본인 또한 문종이 세자 시절에 본 유일한 아들이다.

그리고 아버지 문종은 적장자이긴 했으나 문종이 태어난 1414년 

태종 14년에는 아직 큰아버지인 양녕대군이 세자였고

아버지인 충녕대군, 즉 세종은 아직 세자가 아닌 상태였다.

즉, 태어날 때는 원손이 아니었다.

그러나 단종이 태어난 1414 세종 23년에는

아버지인 문종이 세자였고, 할아버지인 세종이 왕이었다.

또한 할머니인 소헌왕후는 왕비였으며

어머니인 현덕왕후 또한 세자의 정실인 세자빈이었다.

따라서 단종은 태어날 때부터 자연스럽게 원손1441~1448)으로 시작하여

이후로 세손1448~1450 세자1450~1452 1452~1455

모두 차례대로 거친 조선 유일의 국왕이다.

조선 27명 임금들 중 가장 강력한 정통성을 지니고 태어난 단종은
역설적이게도 가장 불운한 임금이었던 셈이다.
결국 이렇게까지 지독한 불운의 결과로 단종 1 1453 10 10
계유정난은 일어나고야 말았다.
단종의 지지자 대부분이 살해 당하거나 유배를 당하면서 자신의 세력을
하루아침에 잃어버린 것이다.
그 자리를 고스란히 차지한 수양대군의 세력은 1년 남짓한 시간이 흐른 후
수양에게 양위를 해야 한다는 압박을 하기 시작하였고,
오래지 않아 단종 3년인 1455년, 단종은 수양대군에게 양위하고
상왕으로 밀려나고야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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