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약고구良藥苦口
良 좋을 량 藥 약 약 苦 괴로울 고 口 입 구
좋은 약은 입에 쓰다
좋은 약은 입에 쓰고 良藥苦口,
충직한 말은 귀에 거슬린다 忠言逆耳에서 나온 말.
효과가 뛰어난 약일수록 입에 쓰기 마련이며,
자기의 잘못을 지적하는 충고일수록 귀에는 거슬리기 마련이다.
흐르는 물이 고이면 썩어 가듯
움직임이 정지되면 마음엔 잡초가 자라난다고 합니다.
상처받기 두려워 마음 가두어 놓고 잡초 무성히 키울 바에야
차라리 어울리는 세상에서 속마음 열어 놓고 사는것이 좋을 것입니다.
들어야 할것 듣기 싫고 가지고 있는것 버리기 싫지만,
마음은 한 시간에 머물러도 한 곳에 갇혀 있어도 아니 될 것입니다.
매서운 바람이 마음 한 구석에 소용돌이를 일으켜
드러난 상처에 생채기를 만든다 하여도
고통이 아픈만큼 줄 수 있는 자람이 있고
교훈이 있기에 마음은 편한 곳에 두어
움직임이 계속 되게 해야할 것입니다.
물은 흐르기 싫어도 흘러야 하고 흐르는 물은 파도를 만들 듯
마음은 추함이 있어도 열려야 하고
아픔이 있어도 흘러야 합니다.
마음의 고통은 공기처럼 소중하여 아픈만큼 삶은 깊어지고
자란만큼 삶이 풍성해지고 편안해 질것입니다.
삶의 깊이는 이렇듯 아픔과 고통이 따를지라도
이겨내는 것이 우리들의 행복을 위한 삶일 것입니다.
오늘은 삼복 三伏 가운데 두 번째 복날인 중복中伏이다
명륜2동 明倫洞
명륜동은 원주시청에서 남쪽으로 약 1.1km 떨어져 있으며
동쪽은 원주시 원인동, 서쪽은 무실동,
남쪽은 개운동과 접해 있고 북쪽은 단계동, 일산동과 접해 있다.
원주군 본부면 상동리上洞里 지역인데 상동리의 일부를 갈라서 남산 지역이라 하여
남산정 南山町이라고 하다가 향교의 명륜당 이름을 따 명륜동이라고 칭하였다.
조선총독부령 제197호 1938년 9월 27일 공포로 본부면이
원주읍으로 승격하면서 개운정 開運町으로 명명되었다.
1946년 정 町을 동 洞으로 개정하여 원주읍 개운동이 되었다가
1955년 원주가 시로 승격되면서 개운동에서 명륜동으로 분리 설치되었다.
1990년에 단구동 일부지역이 편입되었으며 1995년에 명륜 1,2동으로 분동되었다.
60년대에는 상업 및 농업인구가 병존했으나 80년대부터 대규모 상가 및 택지를
조성하여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상업 및 주거전용 지역으로 정착되어 가고 있다.
명륜1동에 있는 원주향교 지방문화재 자료 98호는 고려시대에 건립된 후
소실되었다가 조선조 세종 4년 중건되었다.
임진왜란시 다시 소실되었으나 선조 41년 목사 임취정이 명륜당과
동서제를 중건하고 영조 25년 명륜당을 중건하였다.
6.25동란시 일부 건물이 파손되어 없어지고 대성전, 명륜당, 동서제, 동무, 서무,
외삼문이 남아있던 것을 1988년 동무를 복원하였다.
남산골 [골]
지금의 남부시장 뒷편 남산으로 올라가는 골짜기를 말한다.
남원로
남부시장에서 판부면 서곡리에 이르는 2.4km의 도로를 말한다.
강원감영 남문이 위치한 곳으로 통과하므로 남원로라고 하였다.
약수터
현재 명륜동 1통2반 지역이며 무실동으로 넘어가는 경계에 있는
마을을 말한다.
현재 용화사 약수터가 있는 곳이다.
이 곳에 약수터가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탑두둑 塔洞
명륜동 9,10통 지역으로 남부시장이 위치하고 있는 지역을 가리킨다.
옛날 남산에 탑이 있어서 탑두둑이라 하였다.
향교말
명륜동 4통 지역으로 교동 초등학교 부근을 말한다.
교촌, 생교말이라고도 한다.
원주향교가 있어 불리워졌다.
향나무골
현 종합운동장에서 용화사까지 이르는 골짜기를 말한다.
상나무골이라고도 한다.
향나무가 많이 있었다고 한다.
현재는 서원대로가 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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