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시도 唯利是圖
오직 유 唯, 이로울 리 利 , 바를 시 是 , 그림 도 圖
뜻 : 이익만 꾀할 뿐 다른 것엔 관심조차 없다.
돈과 재물에만 눈이 멀다.
일산동 一山洞
일산동은 시의 중심지역에 위치한 동으로서 동쪽은 중앙동, 서쪽은 단계동,
남쪽은 원인동, 북쪽은 학성동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원주 서남방의 백운산 줄기가 이 지역에서 일자 一字로 마무리되었다
하여 일산 一山이라고 불리워졌다 한다.
1914년 원주군의 행정구역이 10개면으로 확정되면서 일산동은 본부면에 속하였다.
1938년 본부면이 원주읍으로 승격함으로써 원주읍이 14개 정으로 구분되어
일산동은 상동리 上洞里와 하동리 下洞里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금정 錦이라 하다가 1946년 정을 동으로 개정하면서 원주읍 일산동이 되었고
1955년 원주시 승격과 동시에 일산동이 설치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도시기반시설이 거의 완비된 원주시의 중심동으로 상가와 주택지가 혼재되어 있고
인구 고밀도 지역이다.
농협과 원주우체국 등 금융기관 다수가 소재하고 있고 중앙시장과 자유시장, 지하상가가
인접하여 있어서 경제활동 인구가 많은 전형적인 상업지역의 특색을 띠고 있다.
감리교부근
제일감리교회 부근의 마을을 말한다.
감리 교회당이 있어서 불리워졌다.
강원감영문루 江原監營門樓 포정루
강원감영 청운당
일산동 54-1번지에 있는 강원감영터 안에 있는 건물을 말한다.
조선시대 강원감영에 부속되었던 건물로 아전들이 사무를 관장하던 건물이라고 한다.
청운당은 ㄱ자형의 집으로 맞배지붕이며 한식골기와를 지붕에 얹었다.
장대석을 배열하여 기단을 구축하고 그 위에 건립되었으며
서쪽편에는 툇마루를 만들었다.
원형 또는 방형의 주초석 위에 네모기둥을 세웠으며, 한면은 정면 4칸, 측면 2칸이고
또 다른 한 면은 정면3칸, 측면2칸이다.
뒷면은 모두 5칸씩으로 이루어졌다.
청운당은 ㄱ자 집인 점과 툇마루가 달려 있는 것이 특이하다.
객사터 客舍
일산동 54-1번지에 있는 조선시대 강원감영의 객사의 터를 말한다.
조선시대 강원감영 객사가 있었다고 한다.
과수원골
동진골 위쪽에 있었던 마을이다.
현재 기독교병원 남쪽 뒤를 말한다.
과수원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관풍각터 觀風閣
일산동 54-1번지에 있는 관풍각의 터이다.
연못 가운데에 누각이 있었다고 한다.
1796년 정조 20년에 관찰사 서유방徐有防이 처음으로 창건하였던 정각이다.
이 정각은 감영 안에 있던 것으로 향토지에는 봉래각 蓬萊閣 북쪽 연못 가운데
지었다고 하며 6 25 사변 이후 연못을 메꾸게 되자 헐었다고 되어 있다.
1940년에 발간한 강원도지에도 도지 발간 때에는 이미 없어졌다는
기록이 없는 것으로 보아 이 때까지는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정각의 이름을 관풍 觀風이라고 한 것은 관풍속찰觀風俗察에서 온 말로
고을을 다스리는 사람이 그 고을 사정을 잘 익힌다는 뜻에서 쓰는 것이다.
이런 이름은 일반 정각에는 쓰지 않고 관아에 있는 정각에만 썼는데
따라서 이 정각도 감영관아 정각의 하나였다.
국제아파트
일산동 247-162번지, 옛 일산동 주공아파트 자리에 재건축한 아파트를 말한다.
453세대로 1997-98년에 건립하였다.
군인극장
원주시청 북쪽에 있던 극장을 말한다.
현재 공공청사 원주시 시보건소 건물이다.
1950년대 중반에 국방부에 의해 건립되어 주로 군인들의 여가와 문화공간 시설로
사용되어 붙여진 이름이다.
지금은 없어졌고 이름만 남아 있다.
군인극장뒤
원주시청 북서쪽에 위치한 마을이다.
군인극장 뒤에 있는 마을이라 붙여진 이름이다.
남산로 南山路
법원에서 국제아파트, 일산초등학교를 지나 명륜1동에 이르는 3.9.km의 도로를 말한다.
남산을 우회하여 통과하므로 남산로라고 하였다.
다박골
현재 일산초등학교와 원동 주공아파트 부근의 마을이다.
타박골, 저전동, 다복동, 박밭골, 탑전동, 탑앞골이라고도 한다.
옛날에는 숲이 우거져서 다박골이라고 하였다 한다.
남산에 탑이 있었고 탑이 있는 앞이 되므로 탑앞골이라 하던 것이
변하여 여러 이름이 생기게 되었다고 한다.
동진곡 東辰谷
일산초등학교와 북원초등학교 사이로 현 우보삼성아파트 부근을 말한다.
동짓골, 동진곡이라고도 한다.
예전에 동지 벼슬을 하던 사람이 살던 곳이라 하여 동진골이라 하였다고 한다.
한 건장한 남자가 결혼도 하지 않고 여자를 모르는 채 평생을 농사일만 하다 죽었다
하여 아이'童'자에 '眞'자를 사용하여 동진골이라 불렀다고도 한다.
박밭골 → 다박골
봉래각 蓬萊閣 봉래각중수기
선화당 연못 가운데 있었다고 하는 정자를 말한다.
원주 원성향토지에는 1744년에 감사 申琓이 신축한 것으로 선화당 연못 가운데 있었으나
관풍각보다도 먼저 없어졌다"라고 되어 있고
원주군읍지에는 선화당 북쪽 연못 가운데 있는 작은 섬 위에
감사 신완이 갑자년에 세웠다고 되어 있다.
강원도지에는 선화당 북쪽에 있으며 숙종 갑자년에 감사 신완이 창건했으나
지금은 없다고 되어 있다.
여지도서와 관동지에는 정자의 크기는 6간이고 선화당 북쪽 연못 가운데
작은 섬에 있었고 갑자년에 감사 신완이 창건하였다고 되어 있다.
이 정각의 창건은 1684년으로 연대가 추정되며 관아 영내에 있던 것으로
크기는 6간이고 연못 가운데 섬에 지어졌으며 창건기는 남아 전하는 것이 없다.
봉명루 奉命樓
모든 원주읍지에 객관 동쪽에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부자촌 富者村
현 원주 기독병원 앞에 있는 마을을 말한다.
일산동 기독 병원 앞에 있는 마을로 문화 주택이 많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부평각 浮萍閣
읍지들의 기록에는 원주 객관 동쪽에 있었다고 되어 있고,
원주원성향토지'에는 선화당 동쪽에 있었다고 하는 정자이다.
원주 목사 李明漢이 세웠으며 영조 갑인년 李雨臣이 중건하였다고 한다.
지금은 이 정각이 없지만 이 정각의 창건이나 중수는 역사적으로 이름 있는
사람들이 이곳의 관장으로 있을 때 이루어지곤 하였다.
오도일의 부평각 중수기에 '원주의 객관 동쪽에 浮萍이라 이름한 亭閣이 있고
이 정각이 못 가운데 조그만 섬에 있기에 부평이라 이름하였으며
이 정각은 白洲 李尙書가 본도의 관찰사로 있을 때 창건하였다.'라고 하였다.
서문거리 西門
원주시청 별관 서쪽에 있던 길이었다.
조선시대 강원감영의 서문이 있었다고 한다.
선화당 宣化當
일산동 54-1번지에 있는 강원감영터에 있는 고적이다.
일산동 1번지에 있는 강원도 관찰사 江原道觀察使 집무하던 정청正廳이다.
조선 태조 4년1395에 강원감영 江原監營을 원주에 설치하고
고려 충숙왕 忠肅王 때 지은 객사 客舍를 그대로 쓰다가
제 9대 성종 成宗 11년 1480에 감사 권륜 權綸과 목사 牧師 이지 李 가 신축에 착수하여
4년 후에 목사 김적 金象이 준공하였는데
임진왜란에 전소되고 제 18대 현종 賢宗때 감사 이후산 李後山이 재건하였다.
제 26대 고종 高宗 32년 1895에 강원 감영이 폐지되고
춘천에 관찰부 觀察府를 둠에 따라 원주 진위대 原州鎭衛隊가 사용하였다.
원성군 군청사로 사용되어 오다가 시군 통합에 따라 현재는 원주시청 별관이 되었다.
규모는 정면 7간, 측면 4간이다. 기단의 높이는 평균 435mm로 화강석으로 만들었다.
평면의 구성은 내진주 內陳柱의 왼쪽에서 정면 3간, 측면 2간은 문짝이 없는
우물마루를 깔았고 그 오른쪽에는 정면 2간, 측면 2간인 방을 두었다.
내부 중간에는 다시 미서기문을 달아서 2개의 방으로도 쓸 수 있게 하였다.
특히 마루방은 4면에 모두 띠살문을 달았다.
지붕은 겹처마에 팔작지붕을 한 단층집으로 중후한 느낌이 드는 건축물이다.
앞에 강원감영문루江原監營門樓와 오층석탑 五層石塔, 좌불상左佛像 등이 있다.
신진아파트
일산동 272-3번지, 국제아파트 앞에 있다.
152세대로 1992년에 건립하였다.
A도로 원일로
오층석탑
강원감영터 안에 있는 석탑을 말한다
원일로
우산철교에서 남부시장에 이르는 2.2km의 도로를 말한다.
A도로라고도 한다.
교통량이 가장 많고 일산동 지역을 가장 길게 지나므로 원일로라 하였다.
원주기독병원
옛 원주시청 동쪽에 있다.
1912년 앤더슨이 선교사로 부임하여 현 호텔부근에 적벽돌 2층건물을 짓고
스웨든 감리병원'을 개설하였다가 1921-25년 동안에는 폐원하였다.
1925년에는 선교사 맥마니스가 다시 병원을 열었고
1933년에는 삼산의원에 매각되었다.
1959년에 미국 감리교와 캐나다 연합교회 선교부가 50병상으로 개원하여
현재 1,000병상, 950허가병상의 규모로 영서지방 최대의 종합병원이다.
1976년 연세대 기독병원과 합병하였고 1978년에
원주의과대학을 설립하여 현재 약 700명의 학생이 있다.
원주 YWCA
옛 원주시청 동쪽 길 건너에 있다.
1967년에 설립하였다. 직업훈련 및 훈련지도, 복지후생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원흥2차아파트
일산동 355-1번지로 한국주택공사 강원지사 건너편에 있다.
192세대로 1992년에 건립하였다.
일산동 느티나무
선화당 뒤에 있는 나무를 말한다.
1982년에 도나무로 지정되었다.
둘레 600cm, 높이 25m, 수령은 약 600년이다.
이곳에 과거 감영의 정자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일산동주민센터
일산동 219-17번지에 있다.
1989년에 건립한 지하1층, 지상2층 건물이다.
일산동 석탑재
강원감영 터 안 청운당 앞쪽 잔디밭에 있는 석조물 부재이다.
강원감영 터 안의 청운당 앞쪽 잔디밭에 있는 석탑과 석불의 부재이다.
이곳에 옮겨지기 전에 감리교회 앞마당에 보존되었던 유물이다.
석탑이나 석불의 조성양식을 보면 모두 고려시대 전반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일산동 성당
일산동 239-1번지에 있다.
1976년 이학근 신부가 부임하여 설정되었다.
일산로 一山路
옛 시청에서 기독병원을 거쳐 동창약국에 이르는 0.5km의 도로를 말한다.
일산동을 통과하므로 일산로라고 하였다.
일산초등학교
일산동 278번지, 옛 원주시청 남쪽에 있다.
1949년에 설립하였다.
현재 36학급에 약 1400명의 학생이 있다.
일산초등학교 병설유치원
일산초등학교 내에 있다.
1981년에 설립하였다. 현재 원생 약 40명이 있다.
지하상가
1989년에 옛 원주시청 북쪽 아래 사거리 지하에 형성된 상가 및
민방위대피시설을 말한다. 지하도라고도 한다.
친민당 親民堂
원주감영에 있던 동헌을 말한다.
6.25때 불타고 그 자리에 원주군청을 지었다.
포정루 布政樓
강원감영터 정문에 있다.
선화당의 정문이다. 규모는 정면 3간, 측면 2간인 중층팔작지붕이다.
조선 현종원년 1660년에 건립되었는데 6.25때 일부 파손된 것을 보수하였다.
원래는 포정루였으나 1896년 강원감영이 춘천으로 이전하고 나서
운주헌 運籌軒, 선위루 宣威樓라는 현판을 달았다가 없어졌고 6.25이후
강원감영문루 江原監營門樓라는 현판을 달았으나 1991년에 다시 포정루라는 현판을 달았다.
1971년 12월 16일 강원도 유형문화재 3호로 지정되었다.
학성중학교
일산동 250번지에 있다.
1956년에 설립하였다. 현재 30학급에 약 1360명의 학생이 있다.
오층석탑
강원감영터 안에 있는 석탑으로 원래는 하동리 곧 지금의 중앙동 절터에 있었는데
일제시대 때 남산으로 옮겨졌던 것을 1962년 5월에 현재의 자리로 옮겨온 것이다.
1971년 12월 16일 강원도 유형문화재 5호로 지정되었다.
1층 기단 위에 짜 올린 5층의 탑신부로 구성되었는데
상당히 큼직한 기단부와 이 위의 적당히 체감된 옥개석과 탑신이 얇고 평판적이어서
전체적으로 안정감이 있으면서 경쾌한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특징은 고려 시대의 일반적인 양식이어서 불상과 함께 이 당시
석탑양식의 수준작으로 평가된다.
옥신과 옥개의 크기와 높이가 올라 갈수록 조금씩 작아져서 전체적으로 안정감을 주고 있고
옥개석의 낙수면은 약간 휘어져 내리고 끝 부분에서 조금 치켜졌다.
처마선은 아래쪽은 수평이나 윗쪽은 전각 부분에서 약간 반전되었다.
모서리의 수직선은 안쪽으로 비스듬하며 옥개석에 다른 장식은 없다.
이 오층탑은 전체적으로는 고려 때의 석탑 양식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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